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마인 이야기/비판 (문단 편집) === 10권 === * 로마 도로와 역참에 대한 서술을 하면서 로마 도로에 1로마마일마다 서 있던 이정표 모양으로 만들어 표면에 주요 역참이 있는 도시들과 그 사이의 이동거리를 기록한 은컵들([[https://en.wikipedia.org/wiki/Vicarello_Cups|Vicarello Cups]])에 대해 서술하면서 '이 컵이 마치 현대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도로지도처럼 역참에서 판매하는 물건이었지 않을까? 여행자가 이 컵으로 물을 마시면서 다음 도시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는 광경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라고 서술했지만, 이 은컵들은 링크에 서술되어 있듯이 일반에 판매하는 물건이 아니라 장거리 여행을 한 어느 귀족이 무사히 여행을 마치게 해준 신들께 감사하는 의미로 신전에 봉헌한 '''봉헌물'''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이 컵이 판매하는 상품이었다면 비슷한 유물이 또 발견되어야 정상인데 발견된 적이 없을 뿐더러,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귀금속인 은컵을 휴게소에서 아무 여행자들에게나 팔지는 않을것 아닌가. * 로마의 목욕탕에 대해 서술하면서 일반적으로 널리 퍼진 오해인 '로마인은 목욕을 자주 해서 위생적이고 건강했고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대형 목욕탕을 폐쇄하고 목욕을 금하면서 질병이 퍼지고 비위생적 환경이 되었다.'라는 주장을 답습했는데, '''로마인의 목욕탕은 그렇게 깨끗하지 않았다.''' 현대의 목욕탕은 기본적으로 이미 염소소독된 수돗물을 사용하며 상하수도 펌프 시스템을 통해 계속 새로운 물을 쏟아붓고 오염된 물은 배수구로 빼내고 있지만 당시의 목욕탕은 수도교를 통해 흐르는 물이 공급됐는데 물론 고인물이 아니니 비교적 깨끗한 건 맞다. 그러나 염소소독도 펌프도 없던 시대인데다 비누 대신 기름으로 때를 벗겼기 때문에 황제들이 세운 로마 시내의 호화 목욕탕도 수질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전염병이 있는 환자들에게까지 목욕을 권장하여 [[수인성 전염병]]의 온상이나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익사]]사고까지 자주 일어났다고.[[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145/read/25071694?cate=395&orderby=readcount|#]] 그리고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대형 목욕탕을 폐쇄한 것은 유지 보수가 안된 수도교들이 파괴되면서 물의 대량 공급 자체가 어려워지고, 수질 유지 문제, 또 온수를 만들기 위해 대량으로 소모되는 땔감 문제 등이 겹쳐서 생긴 것이고 중세에도 귀족층은 집에서 물을 퍼다가 목욕을 했다. *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10권에서 로마 시대의 문맹률은 매우 낮았고, 로마의 수업료가 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의 읽기와 쓰기를 깊이 연구했던 콜롬비아 대학의 윌리엄 해리스 교수는 고대 로마에서 전체 인구의 무려 90%가 글씨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던 [[문맹]]이라고 하였다. 로마의 문맹률이 높았다는 증거로 로마에서는 각 지역마다 돈을 받고 대신 글씨를 읽어주거나 써주는 직업까지 있었으며, 서기 2세기[* 이때는 오현제를 비롯하여 로마의 국력이 최전성기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로마 영토인 이집트 남부의 카라니스 마을 출신인 페타우스라는 서기관은 자기가 파피루스에 12번 베껴 쓴 간단한 문장인 "지방 서기관인 나 페타우스가 이 서류를 제출합니다"조차 7번이나 마지막 단어를 빼먹었을 만큼 실제로는 글씨를 제대로 쓰거나 읽을 줄을 몰랐고, 다른 서기관인 이스키리온은 그가 담당하던 지역에 살던 주민들로부터 문맹이라서 서기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며 고소를 당했는데 이에 대해 페타우스는 이스키리온은 실제로 온갖 종류의 공식 문서에 서명을 해왔다는 이유로 문맹자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다시 말해, 페타우스 생각에 '글을 안다'는 것은 단지 자기 이름을 쓸 줄 알면 다 되는 것이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로마의 관리들조차 글씨를 제대로 읽거나 쓸 줄을 몰랐다는 뜻이다!][[http://blog.daum.net/eddghsqw/590|고대 그리스와 로마 인구의 대다수는 문맹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